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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시 비평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시집을 비평하는 것 말고 시 한 편에 대해서 몇백 장 쓰는 비평가 말이죠. 이미지 하나로 책 한 권 쓰는 바슐라르처럼요.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100쪽

 

김탁환 작가의 이야기 부분이다.

앞부분에 그의 대학 시절 이야기와 그때 접한 시 이야기가 나온다.

장정일 시를 열심히 읽고 노트를 사서 한쪽에는 시를, 다른 한쪽에는 느낌 한바닥을 적었다고.

 

편견이지만...

아무래도 글을 쓰는 입장(하지만 아무것도 없는)이다보니 '비평'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왜.. 그렇게 나오기까지 창작의 고통을 아니까, 비평가인 네가 뭘 안다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건데.

네가 그렇게 해석한 게 맞아? 하는 그런 이미지.

말하자면 글을 쓰는 사람과 그걸 품평하는 사람의 대립과도 같은 적대적인 이미지.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문장처럼 시 한 편에 대해 몇 백 장이나 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시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나올 수 없는 분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이 인상 깊었다.

바슐라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미지 하나로 책 한 권을 쓴 것도 대단해보인다.

(검색하니까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라고 나온다.)

 

그와 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이라고 좀 우겨보자면...

시를 쓴 적이 있다.

내가 글을 끼적이고는 있지만 시는 학창 시절 이후에 몇 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한 장르이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시로 표현하기에는 내 그릇이 작았다.

 

그 시는 2011년도에 우연히 쓰게 되었는데 배경은 이렇다.

모 근무지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나는 전공 때문에 사보(?) 같은 곳에 들어갈 원고를 부탁 받는다.

인턴의 위치에서 볼 때 부탁이 아닌 그저 명령이었지만 어쨌든 예쁘게 '부탁'으로 포장된 업무.

같은 처지에 있던 인턴은 산문을 쓰는듯 했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 대한 고통으로 인해 산문을 쓴다는 것은 거짓으로 포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건 백일장 트라우마(이전 포스팅 참고)로 내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별 수 없이 시 한 편 적어야겠다고 생각하여 고민 중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퇴근길이었고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아파트 담장에 붉은 장미가 피어 있었던 것이다.

자작시 '홍화'는 그렇게 탄생했다.(부끄러우니까 시는 비공개)

우연히 잡은 거였지만 몇 번의 퇴고 끝에 완성한 건 나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걸 토대로 소설까지 쓰려고 했던 걸 보면.

(원하는 방향과 글의 방향이 맞지 않아서 결국 포기.)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란 시가 있다.

슬프지만 뭔가 그 처연함을 따뜻하게 승화시킨 내용인데

이걸 임철우가 '사평역'이란 소설로 만든 것을 보고 멋지다고 감탄했다.

 

작가란 무엇이든 글로 쓸 수 있구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ed by 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