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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와 동시에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동백 궁에서


#01..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끝에서부터 차디찬 냉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언제나 추운 곳. 4계절이라는 온난 기후가 무색하게, 말하자면 계절마저 비켜가는 듯한 그런 곳. 비국의 남쪽에 위치하면서도 거짓말같이 추운 동백 궁전. 그 곳의 겨울은 혹독하고 잔인했다.
이미 발목 위까지 쌓인 눈을 멀리서 바라보며 공주는 한숨을 쉬었다.

 동백 궁의 뒤뜰에는 강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지만 가시나무와 덤불로 막아져 있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정원사가 손 쓸 방도가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울타리가 된 뒤뜰을 보고 공주는 머나먼 이국의 동화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대해 떠올렸다.

 죽음 대신 잠이 든 공주를 위해 죄도 없고 관계없는 성 안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모두 재운 뒤, 그 성을 지키기 위한 기사로 선택된 것이 찔레나무였다. 찔레나무는 가시를 가지고 있어 서로 얽히고설키어 쉽게 성으로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뒤뜰의 풍경이 꼭 그와 같은 형상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공주는 그 이야기가 사실은 공주를 가둬두기 위한 좋은 감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마저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잠이 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그렇다고 도둑도 아니고 그녀를 구하러 가기 위해 가는 사람들조차 찔레나무의 가시에 찔리고 죽고 100년 동안 그런 일이 계속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하아……."

 다시 한 번 공주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현실은 동화보다 잔혹한 법이다.
실제로 그녀는 동백 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잠이 든 것도 아닌데, 차라리 잠든다면 꿈이라도 꿀 테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 칼바람보다 매서웠다.

 그런 공주의 뒤로 누군가가 조심히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인사였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추워. 날 얼려죽일 작정인가?"
"송구하옵니다. 허나 본궁에서의 지원이 끊긴 이상 예산이……."

미처 말을 맺지 못한 남자가 조용히 장부 같은 것을 공주에게 내밀었다.
그걸 들여다본 공주는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고, 공주님. 부디 말씀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누가? 아직도 날 감시할 이유가 있나?"
"일단 진정하십시오."

공주가 계속 언성을 높이자 남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렸다.

"후우. 그래, 이 예산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바람달까지는 무리입니다."

지금은 겨울 서리달로, 바람달이 곧 봄의 처음이므로 앞으로도 약 3개월은 더 남아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바람달이 된다 해서 별 뾰족한 수도 없지."
"……그렇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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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