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미지의 빨간 약 - 김병섭, 박창현 (7) 책 속 여행2018. 7. 2. 13:23
6강. 여성, 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이 책은 유명한 데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음...
왜인지 모르지만 제목이 안 내키게 만드는 건 확실하다.
어디 라디오에서 소개되었을 때는 분명 읽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그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간 실격’, 제목 참 도발적이다. 실격이라는 단어가 주는 짤막하고도 단호한 어감은 매달릴수록 더욱 구차해질 것만 같아, 지레 졸아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도대체가 ‘자격’이라는 걸 정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선을 긋고 선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자격 미달로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본다면 <남자의 자격>이니 <인간의 조건>이니 하는 예능 프로그램 제목만큼 오만한 게 또 있을까. (160쪽)
자격이 주는 느낌.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 그때는 둘 다 재밌게, 나름 즐기며 본 거라서...(그렇다고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사람에게 자격을 주는 건
사람이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초식동물? 초식동물이 예민해?”
“그럼! 걔네들 완전 예민해!”
“맹수나 이런 애들이 감각이나 운동능력이 더 발달한 거 아냐?”
“아니, 초식동물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거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 (161쪽)
초식남이란 단어가 떠오른 건 나뿐일까?
근데 검색해보니까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남자라는 뜻이란다.
...그런 의미였어?;;;
왜 여자들 앞에 붙는 수식어는 부정적인 게 강하고 남자들은 안 그럴까. 짜증나게.
좀 찌질한 애들을 부드럽게 표현한 느낌이랄까.
맹수한테만 약하고 풀은 사정없이 뜯어먹는다는 점에서... 별로.
실제 ‘나’와 남들에게 보이는 ‘나’가 달라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을 온전히 보여 준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고,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멍하고 틈만 나면 딴생각에 ‘덤벙’과 ‘엉뚱’까지 장착한 나지만, 그건 소설 속 요조처럼 캐릭터일 뿐. 사실 나는 어둡고 조용하다. (162쪽)
여기에 관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나란 누군인가'라는 책을 통해
어떤 것도 전부 나라고 말해주었다.
좋아하는 작가지만 그 책은 한 줄로도 충분히 요약 가능한 이야기이기에 추천할 만한 건 못 되고...( . .)
-안 읽어보고 책모임에 추천했다가 망했던 기억이....
남들에게 보이든 나나 실제 나나... 전부 자신이 갖고 있다면 그게 다 '나' 아닐까?
굳이 뭐 실제니 가짜니 그런 구분이 왜 필요한 걸까.
아,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자기 위안과 가면이 필요한 걸까?
이미지 관리와 실제 자신의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괴로운 건 결국 본인 아닌가?
나도 여러 개의 가면(?)을 쓰는 편이지만
-전문 용어로 페르소나. 연극에서 사용하는 단어.
그게 다 내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그렇게 하는 느낌이지...
이건 진짜 내가 아냐... 이러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렇게 끊임없이 사회적인 자신을 부정하면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뭔지.
말을 하지 않고 생활하려면 적어도 지원이처럼 높은 콧대와 늘씬한 기럭지, 안아 주고 싶은 여린 몸매 정도는 가진 여자라야 한다. 나처럼 투박한 주먹코에, 높은 앉은키 덕분에 더불어 커진 키와 그에 못지않은 골격을 가진 여자는 말이라도 우습게 해 줘야 이 험한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오버페이스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유난을 떨어도 곤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덤벙’과 ‘엉뚱’은 ‘가끔’이라는 단어를 만나야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걸 내 몸은 이미 습득한 것이다. (163쪽)
빌어먹을 외모 지상주의.
이해되지 않는 것을 굳이 이해하려 하는 대신, 혹은 이해하는 척만 하는 대신 더 쉽고 편한 타협점을 찾는 것은 열여덟 여학생에겐 흔하디흔한 일이지 않나? (165쪽)
딱히 열여덟 여학생이 아닌 30대 여성에게도 흔한 일이다.
“하하, 우울해졌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우울해진 건 다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뭔데요?”
“연애를 안 해서 그래요. 제발 연애들 좀 하세요. 모든 사람이 나를 51퍼센트 지지해 준다고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아요.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100퍼센트 지지해 줄 때 행복한 거지.”
“또 나왔다, 연애 지상주의.”
“연애가 얼마나 신기한 경험인데요. 책을 읽으면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가 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이에요. 간접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직접경험만은 못하죠. 하지만 아무도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 수는 없잖아요? 인생을 두 번 살아 보는 것, 그게 연애예요. 한 번의 연애에는 탄생과 성장과 노쇠와 죽음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쌤, 모쏠들을 앉혀 놓고 너무하세요, 맨날.”
“맞아요. 조선시대 사람한테 치즈케이크가 얼마나 달달한지 아느냐고 묻는 거랑 똑같은 거라구요.” (182쪽)
이 부분은 너무 많이 가져왔나 싶지만...
연애 예찬론(?)이 좋아서.
연애가 인생을 두 번 살아볼 정도로 좋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내 주변,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내게 꼭 연애를 권하고는 하면서 뭐가 좋은지는 말로 잘 설명 못했는데....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학생이 반박하면서 한 비유가 멋지기도 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미안, 니가 너무 예뻐서.”
그때부터 나는 예뻐지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눈에 예뻐 보인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처절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184쪽)
우리 사회는 여자에게 가혹하다.
아홉살짜리 여자애를 범한 범죄자의 저 변명을 수용하고 어떤 처벌을 했을까?
아니, 아무 처벌조차 없다.
그래서 여성스럽게 보이는 걸 포기한 여학생의 이야기.
씁쓸한데... 만약 실제로 이 여학생이 있다면 뭐라고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말도 못할 것 같다.
어떤 말이든 위선 같아서.
한국 남자들이 취직을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할 때...
한국 여자들은 거기에 더해서 여자를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아이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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