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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16. 17:41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1) 책 속 여행2017. 5. 16. 17:41

5월 11일~

아직 다 못 읽었다.

 

책모임 선정도서로 내가 추천했는데..................................

망한 느낌.


실패작.ㅠ.ㅠ
내용이 너무 어려웠다.
명확한 메시지는 알겠지만 거기까지의 설명이 좀 중언부언한 느낌도 들고
그 당시 배경을 잘 몰라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고.

 

주제는 '여성과 픽션'이며 거기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가 강연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은 듯.

정리가 전혀 안되어 있다.

 

픽션은 사실에 충실해야 하고, 사실이 진실에 가까울수록 픽션은 더욱 나아진다고 우리는 들어왔지요. (28쪽)

 

당신은 일 년 동안 여성에 대해 쓰인 책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습니까? 그중에서 남성에 의해 저술된 책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43쪽)

 

그 교수가 여성의 열등함보다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이 손상되지나 않을까 더 염려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무한한 가치를 희귀한 보석이었기에 대단히 격렬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간직해 온 것이지요. 어느 성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입니다.(중략) 이 측정할 수 없이 가벼운, 그러나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질을 어떻게 해야 가장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자기 자신에게 다른 사람보다 천성적으로 우월한 점이 있다고 느낌으로써 가능할 겁니다.(55쪽)

 

여성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왔습니다. (56쪽)

 

그리하여 아주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상상에 있어서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전적으로 하찮은 존재입니다.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여성의 존재가 고루 퍼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68쪽)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여성운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아주 흥미롭고도 불명료한 남성의 복합적인 심리에 근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성이 열등하기보다는 남성이 우월하기를 바라는 뿌리 깊은 욕망으로서, 남성을 예술의 전면뿐 아니라 도처에 서 있게 함으로써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합니다. (85쪽)

 

문학은 사리 분별을 넘어설 정도로 타인의 의견에 신경 쓴 사람들이 파멸한 잔해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87쪽)

 

그들은 말하지. 우리가 우리의 성과 방식을 착각하고 있다고.
교양, 유행, 춤, 옷치장, 유희,
이것이 우리가 바라야 할 소양이라고.
쓰고, 읽고,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움을 흐리게 하고, 시간을 낭비하며,
한창때의 남성 정복을 방해한다고.
반면 지루하고 굴욕적인 집안 살림이
우리의 최고 기술이자 쓰임새라고 누군가는 주장하지. (91쪽)

 

"틀림없이"라고 말하는 것은 레이디 윈칠시에 관한 사실들을 찾아보려고 할 때, 흔히 그렇듯이, 그녀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울증에 사로잡힌 그녀가 어떤 상상을 하는가를 보여줄 때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93쪽)

 

우리 시대에서라면 그 모든 행위가 어떤 운명의 바퀴를 돌려놓았을 겁니다. 실제로, 그 거칠고 풍부하며 교육받지 못한 지성을 인류에 도움이 되도록 얽어매고 길들이고 교화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을까요? (95쪽)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101쪽)

 

인간이 평온한 삶에 안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들은 행동을 해야 한다. 할 일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들은 일거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나보다 더 고요한 삶을 살도록 저주받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기 운명에 조용히 반역을 일으키고 있다. 지상을 채우고 있는 숱한 생명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반역의 효소가 발효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여성은 평정을 지켜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들이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며, 자신의 남자 형제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훈련하기를 바라고, 자신의 노력을 기울일 활동 영역을 요구한다. (106쪽)

 

삶은 삶이 아닌 어떤 것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삶으로 판단합니다.(중략) 어떤 유명한 소설이라도 되새겨 볼 때 명백하게 드러나는 바, 소설의 전체 구조는 지극히 다양한 판단과 지극히 다양한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히 복잡한 것입니다. (110쪽)

 

다른 한편 우리가 집어들고 검토하는 이 빈약한 문장들은 처음에는 빛나는 색채와 과감한 제스처로 신속하고 열성적인 반응을 일깨우지만 거기서 멈춰버리고 맙니다. 무언가가 그것의 발달을 억제하는 듯하지요. 또는 그 문장들이 한구석의 희미한 낙서나 다른 쪽의 얼룩을 드러내고, 어떤 것도 흠이 없는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 독자는 실망의 한숨을 쉬며 또 하나의 실패작이군 하고 말합니다. 이 소설은 어디에선가 실패한 것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소설은 어느 부분에선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111~112쪽)

 

소설이 실제 생활과 이러한 상응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소설의 가치는 실제 생활의 가치와 어느 정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가치는 다른 성이 세워놓은 가치와 다른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것은 남성의 가치입니다. (113쪽)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상당히 긴 연속 선상의 마지막 책인 양,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다른 책들-레이디 윈칠시의 시와 에이프라 벤의 희곡, 네 명의 위대한 소설가들의 소설-에 이어진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122쪽)

 

문학 작품에 나타난 여성들 간의 관계는, 문학 작품에 전시된 빛나는 허구의 여성들을 재빨리 회상하면서 생각하건대, 너무나 단순합니다. 아주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시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읽어본 가운데 두 여성이 친구로 묘사된 경우가 있었는지 기억해 보려고 했지요. (126쪽)

 

여성은 타인이 분명한 동기 없이 어떤 관심을 기울일 때 민감하게 의심을 품고 자신을 숨기거나 억누르는 데 끔찍할 정도로 익숙하므로,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눈의 깜박거림에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129쪽)

 

여성의 창조력은 몇 세기에 걸쳐 더없이 고통스러운 훈련에 의해 얻어졌고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으니까요. 여성이 남성처럼 글을 쓰거나 남성과 같은 생활을 하거나 또는 남성처럼 보인다면, 그것도 천만번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세계의 광대함과 다양함을 고려해 볼 때 두 가지 성으로도 너무나 불충분할진대, 하나의 성만 가지고 어떻게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을 이끌어내고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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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