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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중국의 공자와 한비자가 우리에게 제기한 법에 관한 딜레마가 있다. 법적 정의의 실천에 있어서 인간적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공자의 예치(인치, 덕치) 사상과, 인간적 사정과 냉정하게 단절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법치 사상의 대립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경우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기 전인 춘추 시대와 전국시대는 노예제 질서가 붕괴되고 봉건적 토대가 확립되는 과도기였다. 이 시기에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노예제 지배 계급과 새로운 착취 관계를 토대로 봉건 시대를 열려는 신흥 지배 계급은 '예치'와 '법치'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벌였다.
  『중국 법률사상사』에 기술된 자산의 이야기는 이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춘추 시대 약소국인 정나라의 자산은 토지 제도와 조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정(鼎)에 형법을 새겨 대중들에게 공포하였다. 말하자면 성문법을 공포한 것이다. 그런데 귀족 계급의 반대에 부딪혔다. 놀라운 사실은 귀족들이 성문법 형식 자체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노예주들이 노예들을 처벌하는 데 어떤 기준이 없이 자기 맘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법이라는 예측 가능한 기준에 맞춰 처벌하는 것보다 그 공포감이 훨씬 컸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지배 계급은 모두에게 그 규칙을 알게 하는 성문법 공포를 반대했던 것이다.
  공자 역시 자산 식의 성문법 공포에 반대했다. 진나라의 숙향이 말한 것처럼, '백성들이 법을 알면 윗사람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다툼의 시초를 알아 예의를 버리고 법전에만 의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공자의 예치가 '서민을 오로지 형벌로써 다루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혹한 예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강제가 아닌 예에 의한 감화'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비자의 법치보다 노예제 지배 계급의 특권 옹호에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가능한 한 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 노예주 귀족들의 특권을 타파하려 한 신흥 봉건 귀족들은 그것을 방해하는 공자 식의 예치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공자의 이념인 덕치를 주로 하되 형벌로써 보완한다는 덕주형보(德主刑補) 사상으로 귀결되었다. 한비자의 법치는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본건 세력이 기존의 노예주 계급을 공격하는 데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천하가 통일되고 난 후 그들 자신이 기득권층이 되었을 때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법치란 그 내용이 아무리 계급적 의지를 반영했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동일 규범의 평등한 적용'이라는 방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무제한적 권리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공자의 '예치' 사상은 '현인'에 의한 통치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연결되는 것인데, '현인'에 의한 집정이 있음으로써 모든 것이 좋아지고, 한 사람의 훌륭한 황제가 나오면 인민에게 단비와 햇빛을 가져오게 될 것이므로, 백성들은 진심으로 그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일체의 반항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도록 힘썼다는 것이다.
  공자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세상에는 법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희망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공자의 예치 이념은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현대의 법 제도 역시 인간의 이기심을 토대로 하는 한비자의 주장을 실현하고는 있지만, 공자의 사상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제도적으로 법치와 예치가 상호 작용하며 동시에 실현되는 모순적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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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핵무기를 관장하는 미국전략사령부의 1995년도 비밀 보고 연구서는 '미치광이 이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보 공개법에 따라 공개된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자신을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나라로 묘사하는 것은 자해 행위이다. 미국 정부의 어떤 요인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통제 불능일 수도 있다고 비춰지는 것이 오히려 적국의 정책 결정자들의 마음 속에 공포감과 의심을 조장하고 강화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해제: 공자의 예치 사상과 한비자의 법치 사상이 가지는 의미를 춘추전국 시대와 중국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피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두 사상은, 기존의 지배 계급과 신흥 지배 계급이 벌인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주제: 공자의 예치와 한비자의 법치에 관련되 역사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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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