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여행

고유어 접두사의 의미 연구 - 이정애

휘란 2012. 4. 19. 12:50

  인지언어학에서는 많은 접사들이 완전한 단어(자립 형태소)에서 기원하여 점차적으로 접사(의존 형태소)로 변화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를 '문법화'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법화는 자립 형태소가 원래의 의미를 상실 또는 탈색되면서 의존 형태소로 변화하는 과정인데, 접두사는 형태적으로는 자립 형태소들이 자립성을 잃고 점차 의존적 신분으로 된 것이며, 의미적으로는 자립 형태소의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의미가 탈색되면서 접두사만의 추상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접두사인 '개-, 돌-, 알-' 등은 자립 명사인 '개, 돌, 알'이 문법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며, 문법화 과정에서 형태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다만 범주와 의미의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이처럼 접두사가 후행하는 어기※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자립 형태소가 문법화를 거쳐 접두사가 될 때, 둘 사이에는 은유 및 환유 또는 일반화나 특수화 등과 같은 인지적 사유 과정이 개입된다. 가령 '개'의 경우 명사 '개'가 접두사 '개-'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개'의 속성에는 한국 사회의 문화에서만 생성될 수 있는 은유적 의미가 부여되며, 이러한 은유적 의미는 결국 접두사 '개-'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고유한 의미와 기능을 획득한 접두사는 다른 많은 어기들과 결합하면서 더 추상적인 의미로 확장하게 되며, 추상적인 의미를 가질수록 일반화되어 뒤따르는 어기와의 결합 범위가 확대된다. 가령 접두사가 된 '개-'는 식물명 또는 조류나 곤충의 이름 앞에서 '야생의' 또는 '참 것이 아니거나 참 것보다 못한'의 의미를 지니게 되고, '개살구'나 '개꽃'처럼 일부 식물이나 과일 이름 앞에서는 '먹을 수 없는'이라는 의미로 유추되면서 의미와 결합 범위가 확대되어 간다.

  한편 접두사가 기본적인 의미를 획득한 후 그 결합 범위를 확대해 갈 때에는 일반적인 용인 가능성의 원리를 지키게 된다. 이때의 '용인 가능성'이란 '한 접사는 그 접사의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의미가 그 어기가 갖는 어떤 의미와 양립할 수 있을 경우에만 결합될 수 있다.' 라는 인지언어학적 접근 방법을 토대로 한 것이다. '살구:개살구=머루:X'의 경우, 우선 근거 영역인 '살구'와 '머루' 사이에서 '과일'이라는 구조적 공통성을 확인하고, 다음에 '살구'와 '개살구'에서 '먹을 수 있는 과일:먹을 수 없는 과일'이라는 의미 관계를 파악하여 이러한 동일한 의미 관계가 '머루:X' 사이에서도 존재하는가를 고려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인지 과정을 통해서 '개-'의 결합 범위는 '개-'의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의미가 그 어기와 결합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용인되는 것이다.

 

※어기(語基): 단어 형성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 또는 요소. 일반적으로 어간보다 더 범위가 작거나 어간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

  국어를 영어로, 혹은 영어를 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 대체적인 의미만을 옮기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개'는 대개 'dog'로 번역이 되지만 '개'가 지닌 의미와 'dog'이 지닌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개살구'나 '개꽃'의 '개-'가 'dog'로 번역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어의 의미는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해제: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접사의 형성과 의미 획득, 어기와의 결합 등의 과정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고유어 접두사를 중심으로, 접사의 형성 과정을 문법화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그 접사들이 어기와 결합할 때의 의미 획득과 결합의 용인 가능성 확인 과정에서 작용하는 인지적 사유의 양상을 설명하였다.

 

주제: 고유어 접두사의 형성, 의미 획득, 결합 과정에 대한 인지언어학적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