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여행
약과 인체 - 월터 모델
휘란
2012. 3. 9. 14:57
새로운 약물이 듣는가 아닌가를 분간하는 일은 일견 간단한 일처럼 보인다. 의사가 환자에게 투약하여 환자가 건강해지면 들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약물의 효과를 판단하는 일이 이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약물 효과의 판정은 근대 의학의 과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류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 판정은 폭넓은 학식과 창의성, 세심함, 통찰력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약효와 직접 관련이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 중 하나가 대부분의 환자가 약물을 복용하든 안 하든 언제가는 회복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질병의 치유가 약물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 치유력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심리적 효과, 즉 플라세보 효과 때문에 병이 낫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같은 약물이라도 인간과 동물에게 작용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으므로 동물 실험 결과를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경우도 사람에 따라 반응 방법이 다르므로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약이 병만 고치고 환자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신약 평가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문제는 안전성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약 평가의 제 1단계에서는 일련의 동물 실험을 실시한다. 실험동물은 안전성이나 약효와 관련된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하여 먼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제 1군에는 치사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조사하기 위해 다량의 약물을 투여한다. 제 2군에는 인간에 대한 치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투약하고, 장기간 투약의 부작용을 밝히기 위해 몇 개월에 걸쳐 투약하며 관찰을 계속한다. 이 동물 실험에서 연구자는 실험동물의 체중 증감, 운동의 변화, 피부 발진의 유무 등을 관찰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실험동물을 해부하여 조직이나 장기가 약물에 의해 침해되지 않았는지 여부를 정밀하게 조사한다.
동물 실험을 통해 신약의 안정성과 약효과 증명되면 신약 연구자들은 비로소 사람을 대상으로 신약을 실험하는 제 2단계로 넘어간다. 처음에는 소수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데 극히 소량의 약물을 투여하고,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지 살펴보면서 투약량을 늘려 나간다. 이 과정에 조금이라도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그 시점에서 투약량을 다시 줄인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토대로 '증상 반응 그래프'를 작성한다. 이 초기 실험의 결과, 부작용 없이 유효량을 투약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실험 대상을 늘려 실험을 계속한다.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효과보다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투약량을 바꾸면 효과 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나타내는 '용량 반응 그래프'를 만든다.
사람에 대한 안전성이 입증되면 약물의 유효성을 검토하는 제3단계로 진행한다. 이 단계에서는 목표로 삼은 병의 치료에 신약이 효능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실제로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해 보는 임상 실험을 실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된 일련의 임상 실험이 어떤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지 신약을 환자에게 투여해서 병이 나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병의 치유가 플라세보 효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나 환자의 자연 치유력보다 신약의 약리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마지막 단계인 제 4단계에서는 이를 판명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위약(僞藥-플라세보)을 이용한다. 위약을 이용한 실험에는 병의 정도나 체역이 되도록 비슷한 조건에 있는 두 그룹의 환자군을 활용한다. 제1군(투약구)에게는 신약을, 제2군(대조군)에게는 신약처럼 보이는 무해한 위약을 투여하고 두 그룹을 완전히 동등하게 치료하여 그 결과를 비교한 후, 신약의 효과를 판정한다.
해제: 이 글은 신약의 약효를 평가하는 여러 단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신약의 약효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동물 실험으로부터 임상 실험에 이르는 일련의 단계를 거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신약의 안전성과 약효가 증명되면 비로소 신약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주제: 신약 평가의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