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여행
추상 미술 - 마순자
휘란
2012. 2. 6. 12:20
오스본은 20세기의 추상 미술을 크게 '도상적(iconic) 추상'과 '비도상적(non-iconic) 추상'의 두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도상적 추상은 시각적인 대상의 세부의 특수성이나 총체를 묘사하는 방식이며, 비도상적 추상은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의 어떤 부분도 시각 세계의 사물을 묘사하거나 상징하지 않는 추상의 방식을 말한다. 그에 따라 전자는 대상적 추상 혹은 재현적 추상, 후자는 비대상적 추상 혹은 비재현적 추상으로도 불린다.
비대상적 추상은 외부 세계를 재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묘사, 상징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중심은 작품과 대상의 관계로부터 작품과 감정의 관계로 이행한다. 이와 같이 직접적인 표현이나 감정의 환기를 지향하는 예술 형식으로 우리는 음악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직접적'이란 말은 중재의 부재를, 묘사나 기술이 개입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음악이 지속의 예술이지 공간의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의 성격은 비재현적이며 그것은 구체적인 물질 세계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표현적 추상 미술이라고도 하는 비대상적 추상 미술은 바로 이러한 음악적 속성을 비대상성의 획득을 위한 하나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
칸딘스키를 비롯한 표현적 추상 미술가들의 회화에서는 정서적 속성과 음악적 표제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추상 회화가 음악적 비재현성을 모범으로 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 결과 회화에서의 조형 요소는 시간성의 속성을 띠게 되며, 예술은 헤겔이 말하는 '내적 필연성' 또는 '정신적인 것'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표현적 추상 미술가들의 추상은 정서와 시간성과의 연관에서 성립되고 있는데, 이 점이 그들의 회화를 역사적 진보라는 헤겔의 예술관과 연관시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표현적 추상 미술가들의 대표격인 몬드리안과 칸딘스키는 모두 신플라톤주의에 근거하여 보편적 이념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물질적인 현실 세계를 대상으로 삼지 않은 이들의 추상화는 각각 '우주의 보편성'과 '내적 필연성'이란 추상적 관념을 주제로 하여 전개되었다. 몬드리안의 입장이 보다 객관성을, 칸딘스키의 조형관이 더 주관적인 보편성을 추구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 모두는 절대적 보편성의 지향이란 공통점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기하학적이고 표현적인 추상 형식을 '진보'와 '표현'의 개념을 드러내는 형식 단위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모두는 헤겔의 미술 개념과 역사 인식에 내포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겔의 미학 사상은 예술의 역사를 상징적, 고전적, 낭만적 과정을 거치는 변증법적 진화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최고의' 형식은 다음에 올 변화의 잠재성을 지닌 것이 된다. 그리고 헤겔은 일반 역사와 마찬가지로 미술의 역사 또한 '목적'을 갖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미술 형식의 진보는 이러한 목적으로의 '진보'이며 형식 변화는 가치의 증가와 함께 진행되는 것이. 진보의 개념이란 뒤의 것이 이전의 것보다 더 우월한 것임을 의미하므로, 결국 후기의 미술은 더 '좋은 것'의 상징이 된다. 헤겔이 말하는 후기의 미술이란 최근의 모든 미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정신을 '진정하게' 드러내는 예술인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 표현적 추상 미술은 새롭고 진정한 가치를 요구하는 당대 예술으 한 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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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예술은 정신의 합법칙적 발전 과정에 따라 상징적 예술 형식, 고전적 예술 형식, 낭만적 예술 형식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단계는 개별 예술이 대표하는데, 상징적 단계에서는 건축, 고전적 단계에서는 조각, 낭만적 단계에서는 회화, 음악, 시문학이 그것이다. 또한 역사적 발전에 따라 각 예술은 구체적인 물질의 속성인 질료성에서 벗어날수록 정신성이 풍부해지며, 질료성에서 완전히 탈피할 때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정신을 표상할 수 있게 된다.
해제: 칸딘스키를 비롯한 20세기 추상 미술이 가지는 의미와 함께 예술의 역사가 상징적, 고전적, 낭만적 단계를 거쳐 진보한다고 본 헤겔 미학의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는 글이다. 글쓴이에 따르면 20세기 표현적 추상 미술은 '직접적 표현'이나 '감정의 환기'를 지향하는데, 이러한 '정서적 속성'과 '음악적 표제'는 헤겔의 예술관과 관련이 있다. 또한 표현적 추상 미술이 지향한 보편적 이념 역시 헤겔의 미학 사상과 관련이 있다.
주제: 헤겔 미학 사상에서 본 표현적 추상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