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여행
끝없는 밤 - 애거서 크리스티
휘란
2012. 1. 14. 17:24
가끔 아주 가끔..
인터넷 블로그들을 구경하면서 책 소개한 글들을 보면
나도 나중에 이렇게 리뷰를 잘 작성하고 싶다.
어떤 굉장한 사람은 그런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기까지 했는데..
우와~~ 부럽다.+ㅅ+
하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추리소설은 범인부터 말하고 싶어지는 걸!!!(하지 마!!=ㅁ=)
예스24에서 책이 도착할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주문한 거지만 이상하게 택배로 받으면
선물을 받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거였다.ㄱ-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1권 끝없는 밤을 펼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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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새책인데도 책 윗부분이 우둘투둘했다.
꼭 물에 젖은 것 마냥.
이럴 수가! 윗부분을 보니 먼지가 가득하지 않은가!
나온지 오래된 책을 주문하다보니(안 그러면 싸게 살 수 없단 말이야!!ㅠㅠ!!)
어디 창고에 처박혀 있던 걸 보낸 모양이었다.
당황해서 다른 책들도 그런가 하고 봤는데
다행히 이 한 권만 그랬다. 쳇.
물티슈로 책을 벅벅 문질렀다.ㅠㅠ
나는 책장을 넘길 때 옆면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윗면으로 넘기는 습관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맙소사!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 보느라고 힘들었다.
애거서의 글은 늘 그랬듯 좋았다.
셜로키안들이 알면 불쾌해 하겠지만 코난 도일의 문체보다 따뜻하고 섬세했다.
아마도 같은 여성이라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관적인 생각을 맘대로 적어야 하므로
나는 리뷰를 작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끝없는 밤.
제목부터가 늘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녀의 글은.
첫 장에 '순수의 예언'이라고 일부가 실려 있었는데
무언가가 의미심장했다.
다음으로 차례가 나오는데 어, 3부까지 있는 건가. 꽤 긴가봐.
자꾸 셜록 홈즈 전집과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은 그런 식으로 두께나 내용 면에서 실망을 준 적이 없어서 말이지.
길다면 길지만 단숨에 읽는 데는 문제 없었다.
애거서의 글은 중간에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 다음이~ 꼭 궁금해지기에.
언뜻 보면 평범하고도 진부한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진상을 놓고 보자면 더더욱.
난 친절한 리뷰어가 아닌 관계로 미리 주지하는데
애거서 작품을 아직 안 읽었고 혹 읽을 예정이고, 내용에 대한 미리니름이 싫은 사람은
절대로 이 이상 읽지 않기를 권한다.
배경으로 '집시의 땅'이 나오고
거기에 방탕하는 남자 주인공인 나, 마이클 로저스와
수수께끼의 아가씨 페넬라 구트먼이 등장한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그러면서
페넬라가 미국 재벌이란 걸 알게 되고
그러는 걸 보면 부자들은 참 행복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한 것 같기도 한 인상을 받았다.
난 재산의 양과 행복의 관계가 반비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어떤 이의 주장대로 지배층의 이념이 언론을 통해 주입된 걸 수도 있고
돈이 있으면 사고와 말썽이 끊이지 않는 건 사실이므로.
어쨌거나 신비스런 집시 혹은 조금 맛이 간 사람과
그 밖에 돈 밖에 모르는 우글우글한 벌레들 같은 존재와
자기 원칙에 맞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주변 인물들로 등장한다.
애거서 작품에 가끔 푸와로나 마셜이 탐정 역으로 등장하기에
혹 그런 인물이 있지는 않을까 눈여겨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글이 '나'라는 1인칭 화자라는 것에
나는 일종의 데자뷰를 느꼈다.
물론 데자뷰는 아니었고 5권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과
막연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화자가 범인이라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처음 접했을 때 그 신선한 충격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친구에게 그 말을 했더니,
"작가가 그 수법은 한 번밖에 쓸 수 없다고 그랬어."
그랬다면 두 번은 안 썼을 방법이란 건데.
설마.
하지만 내 예상을 뒤엎고-안타깝게도 이쪽 방면으로는 재능이 없는지 난 지금껏 범인을 맞춘 적이 없다.-
비슷하게 얘기가 전개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레타의 존재는 의심스러웠다.
여자를 남편이 질투하다니
보통은 반대가 아닌가?
아니면 이 두 사람이 만난 세계가 달라서 특이한 케이스가 된 건가?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고
나중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낸 걸 봤을 때..
어쩌면 엘리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걸 말하고 싶어한 대화였으니까.
"왜 그런 표정으로 보고 있어요?"
"그런 표정이라니?"
"꼭 나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고 있었잖아요."
"사랑하니까 그런 거지."
그래, 그녀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런 거지.
그 외 마음에 드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길들여진 행복, 어설프게 뒤뚱거리는 복지 국가가 전부는 아니었다.
루비나 에메랄들을 보면 그렇잖아. 예쁜 돌은 예쁜 돌일 뿐이지, 그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전까지는 보잘 것 없고 대수롭지 않은 돌에 불과해.
예쁜 돌을 값비싼 보석으로 만드는 게 분위기지.
위대한 작가인가 누군가 한 말인데 시종이 보기에 영웅인 남자는 없대요.
누구나 그런 시종을 한 명쯤은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항상 남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며 살려면 너무 힘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