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여행

정체성 - 밀란 쿤데라

휘란 2015. 1. 30. 12:21

2015년 1월 23일~1월 29일.

도서관 대출.

 

책모임 선정도서였으나 참가 못함.

읽은 시간 할애를 못해서 힘들었음.

실제 읽은 시간은 아마도 3일 정도.

 

다시 한 번 프랑스 문학은 내게 좀 난해하다는 생각.

그도 그럴 게 정치, 사회, 경제, 문학 등이 전혀 다르고 비슷한 사고도 아니고..

다른 나라 문학들이 전부 그러겠지만 유독 프랑스 문학이 그러한 건,

이쪽 고전을 접한 게 많아서 그런지도.

 

이 작품에 비하면 '벨아미'는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편이었다.

 

 

권태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수동적 권태: 춤을 추고 하품하는 소녀. 적극적 권태: 연 애호가, 반항적 권태: 자동차에 불지르고 창유리를 깨는 젊은이들 (19쪽)

 

마르크스라던지 트로츠키주의자라던지 그다지 아는 게 없다.

대략적인 그들의 주장만 알 뿐.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한국 사람들에게 '운수 좋은 날'은 반어적 표현이라는 걸 문학 작품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그 작품을 모르는 한 그 말은 말 그대로의 의미일 뿐이다.

그래서 프랑스 문학이 난해한 거 아닐까?

 

육체는 수천만의 다른 육체 속에 파묻혀 있다가 한 욕망의 시선이 그 위에 닿으면 엇비슷한 다수의 군중에서 끌려 나간다; 그리고 다시 시선이 무수히 늘어나면서 육체에 불을 지피고 육체는 그 순간 횃불처럼 이 세상을 관통하게 된다. 그것은 찬란한 영광의 시절이지만 곧 시선은 드물어지기 시작하고 빛도 조금씩 희미해져서 이 육체는 말갛게 되었다가 투명해지고 마침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 집 없는 허깨비처럼 거리를 떠돌게 된다. 어렴풋하게 눈에 띄는 단계에서 두번째 단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라는 말은 육체의 점진적 소멸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경고등인 셈이다.(42~43쪽)

 

장미의 메타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메타포는 '은유'란 뜻이다.

그런데 작품을 보면 은유와 메타포를 따로 사용하고 있어 혼란을 준다.

풀이를 보니 내게 와닿는 건 메타포가 아니라 이미지에 가까웠다. 무언가의 상징. 개인적인 의미.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51쪽)

 

52쪽에서는 뒤마의 '삼총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렸을 적에 애니로만 접해서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상업적 관점에서 볼 때 에로티시즘은 애매한 거죠. 모든 사람들이 에로틱한 생활을 꿈꾸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들의 불행, 욕구 불만, 질투, 열등감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에로틱한 삶을 증오하죠. (56쪽)

 

아기를 갖고 동시에 이 세계를 경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를 내보낸 곳이 바로 이 세계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계에 집착하는 것은 아기 때문이며, 아기 때문에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 소란스러움, 그 소요에 기꺼이 참여하며 이 세계의 불치의 바보짓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란다. 너의 죽음을 통해 너는 나로부터 너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너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나는 자유로워졌단다.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암울한 생각이 너에게 어떤 저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너의 죽음이 하나의 선물, 내가 결국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64~65쪽)

 

"차의 앞유리창을 닦는 윈도 브러시처럼 당신의 각막을 닦는 눈꺼풀을 보고 싶었지." (68쪽)

 

잘못된 선택을 고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어떤 직업에도 즉각적으로 호감이 가지 않아 무척 고민했었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눈앞에 제시된 가능성의 폭을 검토해 보았다: 남들을 박해하는 일생을 보내는 검사, 버릇없는 아이들로부터 고통받는 초등학교 선생, 기껏 발달해 보았자 조그마한 편이와 엄청난 재해를 가져다주는 공학 분야, 공허하고 궤변적인 수다뿐인 인문 과학, 그가 혐오하는 유행에 철저히 종속된 실내 장식(목수였던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때문에 관심이 있었다), 상자와 병을 파는 종업원으로 전락하는 한심한 약사. 평생의 직업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자 그의 깊은 내면은 가장 난처한 침묵에 빠졌다. (72쪽)

 

그래서 3년 간 의학 공부를 한 뒤 표류하는 기분에 빠져 공부를 포기했다.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 뒤 무엇을 선택해야만 할까? 그의 깊은 내면은 예전과 다름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무엇에 매달려야 할까? 대학의 실외 계단을 마지막으로 내려올 때 그는 모든 열차가 떠나버린 플랫폼에 혼자 남아 있는 심정이었다. (73쪽)

 

'브리타니퀴스'라는 말도 나오는데 처음에는 브리타니아 뭐 그런 거에서 파생된 단어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프랑스 문학의 제목이다.

로마 네로 황제의 이복동생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라 한다.

역시 모르기 때문에 대략적인 문맥에 의한 상상만 하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면 그녀는 한숨도 쉬지 않고 말을 해. 나는 그녀가 어떻게 그토록 말을 많이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했었지. 그녀는 보고 행동하는 모든 것보다 말을 두 배로 하거든.(중략)

그들의 문제는 시간이고 시간을 흘러가게 하고, 절로, 힘들이지 않고, 지친 고행자가 그렇듯 굳이 시간을 따라가지 않고 시간을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아주머니는 말을 하는 거야. 그녀가 쏟아내는 단어는 슬그머니 시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반면 그녀 입이 닫혀 있으면 시간은 정지되고 묵직하고 거대한 시간이 어둠 속에서 뛰어나와 내 불쌍한 아주머니를 공포에 떨게 만들지. (84~85쪽)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요!"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사랑하는 두 존재, 그건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무리 경멸할 만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이 세계가 필요해.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침묵할 수도 있을 텐데요"

"옆자리에 앉은 저 두 사람처럼?" 하고 장-마르크가 웃었다. "아니야, 어떤 사랑도 침묵에 배겨날 순 없어"

(88쪽)

 

시라노 드 베르즈락 이란 인물의 명칭도 나온다.

역시 프랑스 문학 작품이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그것은 장-마르크가 사용한 아주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긴, 은밀한 비밀이란 무엇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한 인간 존재의 가장 개인적이며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신비스런 점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은가? 그녀의 은밀한 비밀이 샹탈을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던가? 아니다.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반복적이며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비밀이다: 육체와 그 생리적 욕구, 그 병, 그 괴벽, 예컨대 변비나 월경 같은 것. 우리가 수줍어하며 우리의 비밀을 감추려한다면 그것은 그게 너무 개인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그것이 한심할 정도로 비개인적이기 때문이다. 샹탈이 여성에 속하고 다른 여자들과 닮았고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더불어 브래지어의 심리를 지녔다고 어떻게 그녀를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자신은 영원히 멍청한 남성적인 어떤 것에 속하지 않은 사람인 양! (111~112쪽)

 

"그런데 우리 시대는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일깨워주었지: 인간에게는 세상을 바꿀 능력이 없으며, 인간은 결코 세상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라는 거지. 이것이 혁명가로서의 내 체험에 의한 궁극적 결론이야. 더구나 모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수용한 결론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보다 훨씬 심오한 다른 결론도 있지. 그것은 신학적인데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신이 창조한 것을 바꿀 권리가 없다는 것이지. 이러한 금지사항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야만 하지" (145~146쪽)

 

왜냐하면 오직 위대한 지성만이 미친 사상에 논리적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147쪽)

 

-뭔 소리?;;;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신에게 인간의 살을 제공하기 위해서지.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어. 우리에게 번성하라고 요구했지. 너희들은 사랑하고 번성할지어다. 이걸 잘 아셔야지: 이 <사랑하라>의 의미는 <번성하라>라는 말에 의해 결정되거든. 이 <사랑하라>라는 말은 박애적, 동정적인 사랑이나 영혼이나 정열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아주 간단하게 말해 <성교하라!>, <교미하라!> <섹스하라!>라는 뜻이야. 바로 여기에, 오로지 여기에 인간적 삶의 의미가 있는 거야. 나머지 모든 것은 허섭스레기지"

(149쪽, 괄호 안에 말하는 이의 행동 묘사는 생략)

 

"자유라? 당신의 참혹한 현실을 겪으면서 불행해지든지 행복해지든지 그건 당신 자유지. 당신의 자유란 바로 그 선택에 있는 거야. 다수의 용광로 속에 당신의 개별성을 용해시키면서 패배감을 갖느냐, 아니면 황홀경에 빠지느냐는 당신의 자유야. 우리의 선택은 바로 황홀경이지, 부인"

(중략)

우리의 유일한 자유는 회환과 쾌감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다고.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우리의 운명이니 그것을 결점처럼 끌어안고 살지 말고 즐기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153~154쪽)

 

샹탈의 상사인 를르와는 꽤 흥미로운 사고방식과 언변을 쏟아내는데

트로츠키주의자, 혁명 이런 단어들을 통해 내가 떠올린 건 [를르슈]였다. (from 코드기어스)

거기서 가져온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코드기어스 애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