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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아침밥을 먹을 권리

-카프카의 '변신'

 

한 책을 다룬 한 강의 부분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게 좋을 듯하여 같이 붙임.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옳은가. 내가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누려온 특혜들은 모두 나의 ‘성적’ 즉, 내 미래의 경제성에서 기인한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어 하는 걸까? (21쪽)

학교에서 성적 좋은 학생들을 우대하는 게

당연한 듯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은 의문이었다. 왜 그게 당연한 걸까?

성적순이 행복은 아니라고 하면서 학교에서부터 서열을 매기는 이 비교육적인 교육.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일벌레. 또 이런 말도 있지, 공부벌레. 이 즐거운 세상에서 즐거운 것들을 즐기는 당연한 행동을 죄악시하며,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언젠간 행복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만 가진 채 꾸준히 현재를 희생하는 사람들. (22쪽)

'마시멜로 이야기'도 그런 맥락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

또 어떤 책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디엠.

어느 게 맞는지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무엇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 작가는 현재를 희생하지는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이 즐거운 세상에서 즐거운 걸 즐기는 걸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고.

즐기는 게 어때서.

 

살짝 사상적(?)인 면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현재를 참고 견디게 하는 건

어떤 의미로는 지배자의 논리라고 한다. 그렇게 해야 복종하고 잘 참고 견딜 테니까.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오싹해지지만... 그렇다고 반박할 수 있는 건 없다.

왜.. 그런 성공 신화는 분명 '있는 자', '가진 자'들의 논리니까.

 


취향,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조건일지 모른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또 다른 무언가는 싫어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 일이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일이라면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28쪽)

한때 그런 유행어가 있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가 인간일 때는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가족들 부양하기에 급급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가족들이 그걸 지지해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그냥... 누군가의 이해를 받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가족도 이해 못하는데 생판 남인 타인에게 바라는 건 너무 엄청난 소원이겠다 싶었다.

 

그래도 희망은 가져도 되잖아.

누군가 이해해준다면... 지지해준다면... 생각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자고로 급식은 남들보다 일찍 먹는 게 남는 것이다.”라는 짝꿍 단비의 지론에 따라 나도 함께 로드무비를 찍는다. 탄력 좋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복도를 질주하지만 지정학적 불리함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 복도 옆까지 밀려 나온 순대 같은 행렬이다. (32쪽)

여기는.. 급식 지론(?)도 재밌었지만...

복도를 달리는 학생들을 비유한 표현이 재미있어서 골랐다.

특히 '순대 같은 행렬'... 우리 학생들... 어떻게 보면 순대 같겠구나... 하는 슬픔.ㅠㅠ

(교복 색깔이 어두운 색깔이라면 더더욱.)

 


어떤 어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금만 참으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다들 그렇게 살아? 왜 다들 자신의 생활을 바꿔 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마음은 잔뜩 졸인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대체 나는 뭘 좇고 있는 걸까? (33쪽)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조금만 참으라거나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

난 그 '다들'이 아닌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다들 죽으면 죽어야 돼?<-

다수의 논리가 횡포가 되는 느낌이다.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다. 가족 때문에, 친한 친구 때문에,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조언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 때문에 싫은 것을 꾸역꾸역 누르며 살아갈 순 없다.
인간이 삶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게다가 그것을 ‘희생’이라고 부르고 칭송하며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멍청한 짓이다. 즐거운 일을 하는 그 순간, 나는 제일 행복하다. (34~35쪽)

 

희생을 멍청한 짓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준 게 좋았다.

남을 위해. 나를 위해. 누구를 위해...

누가 그런 거 부탁했냐고.

그냥 네 인생은 네가 살아. 내 인생은 내가 살 테니까.

길지도 않은 인생, 넓지도 않은 세상... 뭐하러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투닥투닥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좋아하는 걸 즐기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짧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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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란